웨스틴 조선 호텔 스시조의 재오픈과 함께 최고의 일식 레스토랑을 보유하기 위한 특급 호텔들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미식가들의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스시조를 찾아 일류 일식 레스토랑의 조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맛봤다.
웨스틴 조선 호텔의 일식 레스토랑 ‘스시조’가 다시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0층으로 자리를 옮긴 만큼 면면도 새롭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받은 도쿄의 ‘스시 규베이’와 별 두 개를 받은 ‘스시 가네사카’에서 경력을 쌓은 셰프를 영입한 것이다. 정통 일본 코스 요리의 맛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최고층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분위기도 일신했다. 350년 영의 히노키로 만든 8미터 길이의 바는 나무 가격만 1억원이 넘는다. 홀을 비롯한 룸과는 별개로 사케 바도 갖추었다. 사케 바에는 일본에서도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13종의 사케를 독점으로 선보이고 있다. 여덟 개의 별실은 이우환과 호세 라마의 그림이 걸려 있고, 테이블은 이탈리아 인테리어 디자이너 구이도 스테파니오가 제작했다. 무엇보다 어떤 별실에서나 서울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테리어와 공간 구성에서만큼은 우리나라 최고 일식 레스토랑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이번 스시조의 재오픈은 일식 레스토랑 최고의 컨설턴트로 알려진 마샤 이와타테가 디렉팅했다. 식기도 한 세트에 100만원이 넘는 일본 아리츠쿠 지방에서 생산되는 수제품을 들여왔다. 식재료의 대부분도 매일 매일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다. 식자재의 선도를 유지하면서 셰프의 손에 익은 식재료로 요리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메뉴 구성은 일본 정통 회식 요리인 가이세키로 구성됐다. 일본 최고의 스시 레스토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스시 규베이와 기술 제휴를 맺어 스시 규베이 메뉴를 그대로 즐길 수 있다. 오픈에 맞춰 한국인 조리사가 직접 도쿄로 건너가 4개월씩 기술 전수를 받았다. 사케 바에는 사케 소믈리에’라고 불리는 기키자케시가 요리에 맞는 사케를 추천한다. 보틀로 주문해야 하는 부담감을 덜 수 있도록 ‘하우스 사케’로도 사케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덟 개의 별실 중에는 셰프의 서비스를 직접 받을 수 있는 프라이빗 룸이 관심을 끈다. 여덟 개의 좌석으로 구성된 프라이빗 룸은 룸에서 직접 조리가 가능한 테이블과 주방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일식 셰프의 우아하고 깔끔한 몸짓을 곁에서 눈으로 즐길 수 있으며, 셰프의 요리와 식자재에 대한 생각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스시조는 기본 식기 세팅과 서비스에서도 철저히 일본 최고급 일식 레스토랑의 정통을 따르고 있다. 히노키 바와 셰프의 조리 공간은 구별되지 않는다. 히노키 바와 조리 바 사이는 높이도 같아서 셰프의 조리 솜씨를 편안한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고 식자재의 품질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셰프의 또 다른 손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시미 칼도 조리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날카롭고 긴장감이 서려 있는 칼 때문에 식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였다. 최고의 장인이 만든 사시미 칼은 그 자체로도 볼거리가 풍부한 예술품이었다. 그 칼날에 한 점 한 점 도려져 나오는 횟감의 텐션감은 입 안에 침이 고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칼날이 생선 살을 도려내는 소리까지 맛으로 전해진다. 음식의 맛을 느끼는 또 다른 감각기관인 청각까지 횟감의 단맛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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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케 바에서는 잔 술을 주문할 수 있다. / 2. 히노키 바에서 시각, 청각, 미각이 어우러진 최고의 스시를 맛볼 수 있다.
가이세키 코스를 차려내기 위해 사용되는 식재료의 가짓수만 봐도 스시조의 엄격한 기준을 엿볼 수 있다. 디너 메인 메뉴인 다이코구 스시 코스에 사용되는 식자재는 200여 가지가 넘는다. 김과 소금 등 식자재의 풍미를 살리는 소스는 일본산을 그대로 사용했다. 생강절임과 마늘절임도 스시 규베이 것을 사용하여 일본 요리의 맛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 메인 식자재인 생선 종류도 90퍼센트 이상을 일본에서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다. 조리장 마츠모토 미즈호는 “최대한 스시 규베이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식자재를 중심으로 선택했고, 한국산 식자재를 사용해도 맛의 차이가 없는 것은 한국산 식자재를 최대한 사용했다”고 말했다. 스시조는 한국산 식자재를 찾기 위해 오픈 전 2개월 동안 전국 산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찾은 식자재 중 최고의 식자재로 마츠모토 미즈호는 제주산 방어와 부산산 붕장어를 꼽았다. 제주산 방어는 무게만 13킬로그램이 넘는 것으로 단맛, 신맛, 씹히는 맛 등 다양한 맛을 지녔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산의 붕장어는 일반 장어보다 기름기가 많아 맛이 풍성하다고 했다.
일본산 식자재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김과 소금이었다. 김과 소금은 스시의 풍미를 살리는 소스처럼 사용되는 식자재로 적은 양으로도 식감의 차이를 달라지게 하는 재료다. “너무 흔한 재료지만 맛의 감성을 좌우한다”고 마츠모토 미즈호가 말했다. 김은 일본에서도 최고급 김이 생산되는 마누야마산으로 우리나라 그 어느 지방 김보다 질감이 두껍고 감촉이 가벼웠다. 특히 입 안에 넣으면 입 안에 들러붙지 않고 그대로 녹아내렸다. 스시 규베이의 성게알을 올린 군함 스시가 최고의 스시로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가 김에 있지 않나 싶다. 김 한 장 가격이 2000원이 넘었다. 소금도 역시 일본산 천일염이었다. 미세한 차이겠지만 소금의 맛은 그 나라 바다의 맛과 기후의 맛을 가지고 있다. 스시조에서 사용하는 소금은 오키나와에서 생산된 소금으로 스시처럼 담백하고 단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 소금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천일염처럼 단맛과 짠맛, 그리고 쓴맛이 모두 강한 소금은 스시와 맛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단다. 그리고 일본식 스시에는 와사비 소스나 간장 소스보다는 소금을 약간 첨가하여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본 스시의 맛은 소금이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츠모토 미즈호 셰프의 솜씨를 맛보기 위해 도미 가이센 사라다, 무시아와비와 타코 사쿠라니로 전채 요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다섯 가지 스시와 다마고로 스시조의 스시 규베이의 맛을 엿보았다.
식재료의 선도는 나무랄 데 없었다. 도미 가이센 사라다는 도미의 쫄깃한 맛과 채소의 아삭한 식감이 조화로웠다. 채소 씹히는 맛이 더 강해 도미살은 씹는 느낌 없이 그대로 녹는 듯했다. 복사시미처럼 얇게 썬 걸 보면 채소로 입 안에 남은 다른 음식의 잔 맛을 없애면서 도미로 바다의 향을 살짝 돋우며 다음 요리를 기대케 하기 위한 전채 요리로 손색이 없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무시아와비와 타코 사쿠라니는 소금 소스로 맛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간장 소스로 풍미를 살리기 위한 요리였다. 부드럽게 쪄낸 아와비를 소금에 찍어 먹으면 혀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이제 어떤 요리든 숨은 맛까지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혀가 됐다고 할까. 간장 소스로 쪄낸 타코의 달콤한 맛은 혀에 에너지가 채워지는 맛이었다. 세 가지 전채 요리로 혀를 감각과 에너지를 채운 F1 레이서로 만들어왔다고 할까.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다섯 가지 스시가 나왔다. 일본산 갑오징어로 쥔 아오리 이까 스시, 고하다 스시, 아나고 스시, 타이 스시, 뱃살에 가까운 주드로 스시 등이었다. 아오리 이까 스시는 소금 알갱이 한두 개만 올리고 먹는 것이 좋다. 갑오징어 살에는 짭조름한 맛이 배어 있고 실키한 감촉으로 혀의 감촉을 살리기 위해 먹는 스시이기 때문이다. 고하다 스시는 전어의 고소함과 단맛을 고스란히 느끼기 위해서는 역시 소금간이 제격이다. 서너 줄의 칼집은 비늘에 쌓여 있는 속살의 단맛을 혀로 직접 느끼기 위한 것이다. 칼집이 너무 깊으면 씹을 때 생선 살이 너무 빨리 부서져 밥알과 함께 씹히는 맛이 떨어지고 너무 얇으면 혀가 아닌 씹을 때 잇몸이 단맛을 느끼기 때문에 식감이 떨어진다. 타이 스시는 돔 생선 살의 쫄깃한 맛과 담백한 기름 맛이 고르게 배어 있는 것이 좋다. 흰 생선 살이기 때문에 생선 기름에 의한 윤기만으로 식감을 자극해야 한다. 소금 간과 밥의 품질에 따라 맛이 결정된다. 스시조에서는 최종적으로 이천 쌀을 선택했는데 국내에 있는 150개가 넘는 쌀을 테스트했다고 한다. 또한 밥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스시 레스토랑의 스타일이 좌우되기도 한다. 스시조는 한국 스타일로 변한 다른 일식집에 비해 끈기가 덜했고, 밥알이 좀 더 단단하게 느껴졌다. 밥맛으로만 스타일을 말한다면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밥맛이었고, 비교적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조리장에 의해 최고의 붕장어로 평가받은 아나고로 쥔 아나고 스시는 붕장어인가 싶을 정도로 육즙이 풍부하고 쫄깃했다. 기름기 많은 부산 산이라고 하더니 붕장어의 푸석한 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면서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소금간 간장 소스 두 가지 맛으로 즐길 수 있게 세팅되어 나왔다. 주드로 스시는 다른 스시에 비해 감흥이 떨어진다고 할까. 스시 중 셰프의 영감이 가장 적게 반영되는 참치 스시는 식자재의 선도 말고는 이야깃거리가 없다.
마지막 요리는 디저트를 대신한 다마고로 긴 레이싱의 마침표를 찍었다. ‘다마고 맛을 보면 스시집 퀄리티를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우리나라의 ‘간장 맛’ 속담 같은 존재가 다마고다. 스시 규베이의 비법을 그대로 전수받아 만든 스시조의 다마고 맛은 스시조를 다시 찾게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달걀을 이용해 카스텔라처럼 쪄내는 다마고는 보통의 경우 달걀말이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스시조의 다마고는 푸딩처럼 텐션감과 카스텔라처럼 사르르 녹는 식감을 동시에 보여줬다. 거기에 새우를 갈아 넣어 바다의 맛도 함께 연출하고 있으니 최강의 다마고라 할 만했다. 입 안에 단맛이 고르게 퍼지는 기쁨이라고 할까. 말차로 입 안을 씻어내는 것이 싫을 정도로 시스조의 여운을 길게 가져가고 싶었다. 최근 대형 호텔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시 레스토랑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된 시점에서 조선호텔의 스시조 재오픈은 경쟁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다만 스타일과 맛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모던한 취향이 강한 편이어서 미식가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연령대인 중년 이후의 고객을 어느 정도 중독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우리나라 바다는 소금 향이 강하다. 셰프의 섬세한 솜씨도 중요하지만 생선 고유의 비릿한 느낌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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