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은 김치와 더불어 우리의 대표적 발효식품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고구려시대부터 그 맛에 매료됐다. 청국장은 특유의 퀴퀴하고 쿰쿰한 냄새로 가끔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한 번 그 맛을 보면 숟가락을 놓을 수없을 만큼 은근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제대로된 먹을거리를 찾기 힘든 시절, 경기도 안성에서 만난 청국장 전문점은 '고향의 맛'에 목마른 사람들이 흡족한 표정으로 오가는 그런 집이었다.
성신식당은 안성시청에서 걸어 5분여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무슨 '맛집'과는 상관없을 듯한 평범한 집이지만 "청국장 맛만큼은 어디서도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이 집을 찾는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입을 모아 칭찬한 그 맛은 다름아닌 '추억의 맛'이다. 옛날식으로 띄우고 끓여내 어머니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매력을 지녔다.
이 집의 손맛은 꽤 오랜 세월 쌓인 솜씨다. 주인 신양순씨(55)는 친정어머니(77ㆍ최병희)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다. 최병희 할머니는 20대 젊은시절부터 청국장을 띄워 시장에 내다 팔았고, 딸 양순씨는 평택 중앙시장에서 14년(중앙식당), 이후 지금의 자리에서 17년 등 31년간 청국장을 끓여 왔다. 따라서 모녀의 청국장 내력은 도합 55년은 족히 된다.
청국장은 우선 띄우는 과정이 생명이다. 이 집은 따끈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서 띄우는 옛날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번거로운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발효에 그 비밀이 담겨 있다. 옛날식으로 해야 잘 뜨고 제대로된 맛을 내기 때문이다.
"말이 서민음식이지 띄우는 과정을 생각하면 우습지도 않아요. 까탈스럽기가 콧대 높은 처녀 이상가거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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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 신양순씨가 정성스럽게 콩을 씻고 있다. 잘 발효된 콩과 그로부터 완성된 청국장이 먹음직스럽다.
우선 국산콩만 가려 쓴다. 맛은 물론 발효를 좌우 할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콩은 남동생이 강원도 정선에서 지은 것과 친정 동네(안성시 발화동 농촌리)에서 재배한 것을 가져다 쓴다. 콩은 수입-국산간 가격차가 크다. 80kg 기준 한가마에 국산이 35만원, 수입산은 15만~20만원선에 거래된다. 그럼에도 국산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국산콩은 콩이 잘 불려진다. 3시간만 물에 담궈도 당장 삶기에 적당하다. 반면 바짝 마른 상태에서 수입되는 수입콩은 불리는 속도가 더디다. 또 절구질에도 차이가 난다. 국산은 절구질을 하기 힌들 정도로 끈적한 진기가 많고, 수입산은 진기가 부족하다. 맛에서도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콩은 먹을수록 구수하고 단맛이 돌지만 수입산은 쓴맛, 씁쓸한 뒷맛이 따른다.
청국장을 띄우는 첫작업으로 먼저 콩을 씻어 불린다. 3~4시간 불린 콩을 조리질로 쭉정이 등을 가려낸다. 이후 큰 솥에 삶는다. 한 번에 두말반(20kg) 정도를 삶는다. 처음 1시간 한소끔 끓고 나면 8시간 동안 푹 익도록 약한 불로 뜸을 들인다. 바가지로 퍼내면 뭉개질 정도로 익힌다. 다 삶은 콩은 소쿠리에 건져 두어시간 동안 식힌다.
이제부터 본격 띄우기 작업. 바닥에 이불을 깔고 그 위에 삶은 콩을 담은 대바구니를 얹는다. 대바구니 위를 면보자기로 덮는다. 그 위에 두툼한 이불을 덮는다. 겨울철에는 두개를 덮어준다.
이때 아랫목 온도도 중요하다. 손을 대서 따끈함이 느껴지는 정도가 적당하다. 너무 뜨거워도, 차가워도 발효가 잘 안된다. 실내 온도는 섭씨 36도 정도, 습도도 70~80%는 유지해야 한다. 청국장을 띄운 방문을 열면 특유의 냄새와 함께 한마디로 후텁지근한 기운이 확 느껴져야 한다.
"별 것도 아닌 것이 무쟈게 까다롭드라구요. 옛날에 왜 청국장 띄운 방문을 열면 어머니한테 혼났잖아요. 자주 방문을 여닫으면 띄우는데 실패하거든요."
청국장을 띄울때는 깨끗이 손질한 볏집을 둘둘 말아 대바구니 군데군데 박아 넣는다. 잘 띄우기 위함이다. 삶은 콩은 대기나 볏짚에 있는 바실러스균에 의해 발효되는데 특히 볏짚속에는 이 균이 많이 들어 있다. 신씨는 발효촉진제 격인 짚을 친정 동네에서 구해온다.
"암튼 친정 빠지면 암 것도 못할 뻔 봤시요. 하하하~."
이불을 덮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 한 번 덮은 이불을 다시 덮으면 잘 뜨지 않는다. 때문에 한 번 쓴 이불은 반드시 세탁을 해서 써야 한다. 또 나일론 등의 소재로 만든 이불은 안되고 면이불이어야 한다. 콩이 뜨면서 배출한 습기를 잘 빨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계절과 기온에 따라 발효기간도 다르다. 요즘처럼 선선할 때에는 3일이면 먹기 좋을 만큼 청국장이 발효된다. 한여름에는 2일, 겨울철에는 줄잡아 5일은 기다려야 맛깔스럽게 발효된다.
일단 잘 띄운 청국장은 절구에 넣고 찧는다. "원래는 절구에다 찌섰는데, 우리 집 절구가 좀 작아 불편해요. 그래서 사실은 다라이에 넣고 셋이 둘러 앉아 찌서요. 하하하"
고루 으깨진 청국장은 냉장고에 한관크기(3kg)로 덩어리 지어 넣어둔다. 하루 3개 정도를 쓰니 대략 하루 100여 그릇을 판다. 식당이 비좁아 더 팔고 싶어도 마음 뿐이다.
"점심때는 줄을 서요. 몸은 주방에 있지만 귀는 홀에 가 있거든요.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보면은 기냥 미안시러 죽겄어요. 그럴때는 포기하고 가시는 게 차리리 제 맘이 편하죠."
잘 띄운 청국장일지라도 끓이는 노하우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이 집은 우선 즉석 조리가 원칙이다.
먼저 뚝배기에 청국장을 떠넣는다. 보통 1인분에 한주걱(큰 숟가락 2개) 정도를 떠담는다. "청국장이 많이 들어가야 제맛을 내죠. 청국장으로 간을 해야지 소금으로 간을 맞출라믄 맛이 없거든요."
잘게 썬 신김치와 느타리 버섯을 찧어 넣은 후 매콤칼칼한 맛을 낼 청양고추도 총총히 썰어 넣는다. 이후 육수를 붓는다,
평범해 보이는 육수도 끓여내는 비법이 있다. 다시마, 양파, 무, 대파 등을 넣고 끓이다가 멸치는 나중에 넣는다. 처음부터 멸치를 넣고 팍팍 끓이면 육수가 씁쓰레하고 맛이 없기 때문이다.
"자식들 키우려고 청국장 연구 엄청시리 했어요. 하여간 밤잠 설치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 집 청국장 끓이기의 또다른 특징. 두부와 어슷하게 썬 대파를 넣고는 센불에 빨리 끓여낸다. 마치 중국집 주방에서나 볼 법한 불꽃이 한 자 정도는 높게 치솟도록 화력을 높인다.
혹자는 청국장은 오래 푹 끓여야 제맛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신양순씨는 센불에 한소끔 끓여내야 영양도 살고 제맛을 담아낸다고 믿는다.
"테레비 보고 배웠어요. 청국장 붐 일때가 있었는데 어떤 박사님이 청국장 영양소 파괴를 막으려면 살짝만 끓여야 한다고 하시드라고요. 실험을 해보니 손님들도 그게 더맛있어 하구."
신씨의 청국장에는 미원 등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는다. 밑반찬으로 짠무무침, 장아찌, 콩나물무침, 김치, 생선조림, 계란찜 등을 내놓는데, 이것들을 조리할 때 미원을 살짝 친다.
손님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대답은 한결같이 "맛있다"이다. '담백한게 어디 가도 이 맛이 안나오는 오리지날 청국장'이라고 칭찬 일색이다.
신씨네 청국장찌개는 국물이 많은 편이다. 때문에 국물도 담백한 듯 시원하다. 예전 쌀쌀한 가을날, 고향집 저녁 밥상에 올려진 그 뚝배기 속의 깊은 맛이 담겨 있다. 신양순씨의 청국장이 이처럼 감칠맛 나는 것은 인생의 연륜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앞서 보내고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청국장에 악착같이 매달렸다.
신씨는 또 대뜸 "술은 절대 안 팔았다"고도 했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자칫 상처를 줄까봐 처신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얘기다.
신씨의 손맛은 법대를 나온 큰 아들(35ㆍ이창희씨)이 잇고 있다. 5년전 아들이 자진해서 해보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다. 칼가는 법부터 배우더니 이제는 청국장 띄우는데 도사가 됐다.
"아들이 판-검사되기를 바랬는데, 청국장 끓이겠다니 첨엔 솔직히 실망했지요,. 근데 어쩌겄어요. 뜻대로 안되면 얼른 접고 새출발 해야지. 장사도 똑바로 배우면 괜찮거든요."
고향의 순수한 맛 듬뿍
▶박희열(46ㆍ안성시청 안성맞춤 마케팅담당관실 기획담당계장)
청국장은 그 구수함부터가 고향의 순수하고도 포근한 맛을 낸다. 이 집에 오면 그런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다. 내부 또한 시골 같은 분위기에 맛도 기교가 가미되지 않아 순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자주 들르게 되고, 적극 추천하고 있다.
젊은이 입맛에도 잘 맞아
이 집 음식은 젊은 사람 입맛에도 곧잘 맞는 편이다. 건강식으로, 특히 '청국장 다이어트'라는 것도 있으니 아무래도 관심을 갖고 자주 먹게 된다. 냄새날까 두려워서 못 먹지는 않는다. 그보단 맛과 건강이 우선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실속을 먼저 따진다. 내 입맛에는 안성맞춤이어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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